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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enti 턱균형 연구소/턱관절의사 문형주

문치과병원 문형주의 턱 이야기 - 문치과병원 턱관절의 기적2

본 블로그 내용은 문형주 원장님이 쓰신 '건강한 사람은 그럴 턱이 없습니다'라는 책 내용으로

나누어서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은 문치과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턱관절 환자 실제 치료 사례 내용입니다.

 

 

 

 

 

우선 그녀의 증상이 전형적인 턱관절 장애 증상이라는 걸 설명했습니다.

아직 진찰해본 것은 아니고 간단하게 상담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사람의 몸을 다루는 일은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재삼재사 확인을 해야 합니다.),

만약 치료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집에 가서 잘 생각해본 다음 다시 한 번 우리 병원을 찾든지

다른 턱관절 전문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상식적인 수준의 답변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금방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지금까지 불가사의였던 자신의 병이 턱관절 장애라는 확실한 이름이 붙였다는 사실,

그리고 약간 수상쩍긴 해도 번듯하게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가 치료를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턱관절 장애라는 말,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이 말이 체념과 회한으로부터 그녀를 건져 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녀는 꼭 다시 내원할 테니 그때 보자며 딸의 손을 잡고 황망히 병원을 빠져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습니다.

 

 

 

 

 

두 모녀의 기억이 퇴색되어 오래된 사진관의 빛바랜 가족사진처럼 변해버렸을 때쯤 그녀가 다시

병원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

", 안녕하세요, 선생님?"

 

쭈뼛거리며 민망한 표정으로 진료실 의자에 앉는 그녀는 1년 전의 고통스러웠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증상은 좀 괜찮아지셨어요?"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 1년간의 고행을 쏟아냈습니다.

 

 

 

 

그녀는 1년 전 그날 나와의 상담이 끝난 뒤 바로 지인에게 턱관절 전문 병원을 소개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간 그곳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통증이 나아지기는 커녕, 턱관절을 고치기 위해 장착한

스플린트(splint : 턱관절을 교정하기 위해 입 안에 장착하는 장치)의 이물감 때문에 안 하느니만 못한

치료가 됐다는 것입니다.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몸은 몸대로 아프고....,"

 

그녀의 하소연이 진료실 안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습니다.

처연하다고 해야 할까요, 애틋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역시나 똑같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의 빛이 절묘한 균형을 맞춘 채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많이 겪어본, 앞으로도 수없이 겪게 될 눈빛이었죠.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턱관절 장애라는 병, 그리고 그걸 치료하는 의사라니....

아직까지 학계에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했고, 누가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가이드라인도 정해지지 않은 턱관절 장애, 그렇기에 환자들이 보내는 눈빛을 나는 이해합니다.

 

아니, 감사한 마음마저 듭니다.

그 눈빛이야말로 내가 넘어서야 할 인생의 진정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 그럼 뭐부터 시작할까요?"

정확히 375번째 마주하는 도전자(?)의 눈빛을 보며 나는 쾌활하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내 375번째 턱관절 장애 환자와의 만남은 매우 조심스럽게 시작됐습니다.

 

3개월 뒤 그녀가 말했습니다.

 

"이제 살 것 같아요."

 

 

 

 

그녀에게서는 눈 당기는 증상과 머리를 맷돌로 짓누르는 것 같은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불면증도 많이 호전됐고, 소화도 이제는 잘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녀의 눈은 막연한 기대감이나 불안감 대신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찾아오는 거였는데.... 지난 세월이 아쉬워요."

 

늘 그렇듯이 병증이 호전되면 환자들은 이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쏟아냅니다.

말투에는 지난 세월 겪어야 했던 지긋지긋한 기억의 고통과 낭비했던 시간과 치료비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있지요....

그 심정은 손에 잡힐 듯이 나에게 다가왔지만 그때마다 내가 하는 말은 똑같았습니다.

 

"어머니, 제 개똥철학 한번 들어보실래요? 저는 인생은 해석이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정말 인생은 해석하기 나름이거든요.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한없이 가라앚는 게 사람 마음이고,

긍정적으로 바로보면 세상을 다 얻을 수 있는 힘을 얻는게 또한 사람 마음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은혜요, 감사입니다.

지금 어머니가 가져야 할 마음은 왜 진작 절 만나지 못했냐는 후회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만나서 병을 치료하게 됐다는 감사의 마음입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순 없지만 지금 현재를 알차게 보내면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죠.

후회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치료에 전념하셔서 치료 기간을 단축한다면 그만큼 시간을 보상받는 겁니다.

인생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말 달라집니다."

 

상투적인 이야기지요?

그러나 나는 이 상투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정말 즐겁습니다.

이런 말을 전할 수 있다는 건 내 앞에 있는 환자가 많이 호전됐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또 한 명의 환자를 치료했다는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한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되살려냈다는

인간적인 기쁨이 교차하는 그 순간!

난 나 자신이 매일매일 그런 순간에 매혹되는 의사이기를 희망합니다.

의사로서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