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Denti 턱균형 연구소/턱관절의사 문형주

문원장의 턱관절 연구스토리 - 보완대체의학이란 무엇인가? 3편

[문치과병원] 문원장의 턱관절 연구스토리 - 보완대체의학이란 무엇인가? 3편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에서는 몸을 부위별로 나눠 치료하는 개념이 아니라

온몸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통합 의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들 중에서도 제 시선을 끈 것은 바로 근막이완요법(MFR : Myofascial Release) 학파에서

주창하는 근막이론인데요, 우선 근막이 무엇인지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근막 이미지]

 

 

골격근조직은 다수의 근섬유가 모여 다발을 구성하고 그 다발은 두꺼운 막에 의해 결합된 채 덮여 있습니다.  

이 막을 근막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콜라겐섬유로 구성되어 있고, 미량의 엘라스틴 섬유도 함유되어 있습니다. 

근막은 간단히 말해서 뼈와 근육, 신경 등을 감싼 막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마 근막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접한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뼈, 근육, 신경 등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듣는 단어들이지만  

이를 감싸는 막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을 테지요?  

그런데 이 생소한 근막이 우리 인체의 균형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학을 한다는 것이 근막이완요법 학파의 주장입니다.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인체의 균형과 불균형은 근막 구조의 제한과 이동성 이상에서 발견된다. 

인체의 근막이 서로 들러붙어 근막들 사이의 공간이 좁혀지거나 어그러지면

근막과 근육의 움직임이 제한돼 인체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근막에 문제가 생기면 인체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근막과 근막 사이의 여유 공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만약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지 못하면 근막과 근육의 움직임이 제한되고, 이로 인해 근육이 뻣뻣해지게 되거든요. 

 

 

근막이완요법은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가벼운 신체 접촉을 통해 근육의 균형을 잡아주고  

신경을 자극해서 막의 구조를 바로잡아서, 궁극적으로 인체의 균형을 되찾는 치료요법입니다.

 

 

 

 

 

 

샌드위치를 생각해봅시다.

두 장의 빵 사이에 햄과 각종 채소, 마요네즈, 치즈가 들어 있는 샌드위치입니다.

샌드위치를 랩으로 감싸보세요. 그런 다음 이 샌드위치를 꽉 눌러보세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빵 사이에 내용물은 다 빠져나오기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균형을 잃고 삐져나오려는 샌드위치를 손으로 다시 다듬어 정상적인 형태로 바꾸는 것이 근막이완요법입니다.

 

카이로프랙틱, CRA, 그리고 근막이완요법까지...

이제까지 언급했던 보완대체의학 치료법들은 나에게 새로운 영감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이제 세계의 의학은 서양의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움직임의 핵심은 인감의 몸을 부분 부분으로 나눠서 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생각하는 통합적 사고입니다.

이런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을 지향하는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통합의학으로 향하는 이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턱'은 그 흐름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는 키워드로 자리할 것입니다.

 

 

14세기 프랑스에서 한때 인간의 사망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잠시 있었습니다.

과연 인간은 왜 죽는 걸까?

인간의 죽음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당대의 석학들이 저마다 의견을 말했지만 논의는 곧 수그러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프랑스인들의 평균 수명은 26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말하기에는 그 수명이 너무 짧았던 것이죠.

 

 

 

 

 

 

지금도 인종과 국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서양의학은 그 짧던 인간의 수명을 평균 80세까지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의학은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을 더 떼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학자들과 의사들이

치료와 연구에 집중하고 있지요.

 

 

그러나 언제나 그렇지만 첫 발을 떼는 자들에게는 따가운 시선이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말했던 갈릴레오나 진화론을 주장했던 다윈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이룩해왔던 의학의 역사는

시대의 흐름과 기술의 진보 앞에서 수많은 도전과 변화를 되풀이해왔었다는 점입니다.

 

이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태어나는 걸까요?

중학교 생물 시간에 졸지만 않았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겁입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면 세포분화를 일으켜서....

이제 지금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현미경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정자 안에는 아주 작은 사람이 들어가 있고,

이 정자가 여자의 자궁 속에 들어가 자라는 것이라고 믿었었죠.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라고요?

이 이론은 현미경이 발명돼 발생학(發生學)이 자리잡기 전가지 서양의학이 상식이었습니다.

 

기술의 진보와 시대의 흐름 앞에서 절대라는 말은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또 다른 절대적인 상식을 넘어서려는 과정에 있습니다.